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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link>/nas/k2web/WIZARD_7.0.6.2_hallym/sites/museum/</link>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CDATA[서안(書案)}]]></title>
								<link>/bbs/museum/744/326143/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11:35:54.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서안(書案)
 조선, 높이 24cm, 너비 40.9cm
 
 사랑방은 전통가옥에서 남성들이 주로 생활하던 공간으로, 선비들은 주로 글을 읽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곳입니다.
 선비들의 학문과 인격수양에 도움이 되도록 번잡함을 피하고 검소한 분위기였습니다.
 사랑방에는 선비들의 공간에 걸맞은 독서와 글쓰기에 사용하는 서안이나 경상(經床), 책장, 문서나 문구를 넣어두는 문갑 등을 갖추고 있었고, 벼루, 연적, 붓, 종이, 필통 등을 비치하였습니다.
 서안은 독서를 하거나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좌식 책상입니다.
 벼루를 담은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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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가락지}]]></title>
								<link>/bbs/museum/744/326142/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11:30:4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가락지
 조선, (왼쪽)지름 2.2cm, (오른쪽)지름 2.9cm
 
 가락지는 손가락에 끼는 고리 모양의 장신구입니다. 한 짝만 끼는 것을 반지, 두 짝을 끼는 것은 가락지라고 하며 지환(指環)이라고도 부릅니다.
 가락지는 원래 신분 확인을 위해 서로 나눠 가지는 신표(信標)인 물건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남녀의 애정에 대한 믿음의 정표(情表)로 쓰였습니다.
 두 짝의 가락지를 한 쌍으로 착용하는 것은 이성지합(二姓之合),부부일신(夫婦一身)의 의미로 기혼녀가 가락지를 사용하였으며, 미혼녀는 반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안경(眼鏡)}]]></title>
								<link>/bbs/museum/744/326141/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23 15:07:45.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안경(眼鏡)
 조선~근대, 길이 12.2cm  
 
  인간의 몸은 20세를 정점으로 서서히 완만하게 노화의 길을 걷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시력의 변화다. 마치 강속구 투수가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기교파가 되듯이 팔다리나 내부 장기의 노화는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노동의 강도가 적은 일로 바꾼다거나, 여럿이 같이 한다거나. 그러나 눈은 다른 무엇보다 노쇠에 대한 타격이 크다. 아예 인간의 행동 자체를 제약하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데는 광학기술의 발전이 필수였다.
 안경의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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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시전지판}]]></title>
								<link>/bbs/museum/744/326140/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2-04-26 11:26:45.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시전지판(詩箋紙板)조선, 가로 6.8cm, 세로 15.1cm    이번에 소개할 소장품은 시전지판입니다. 시전지판은 시를 짓거나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종이인  시전지 를 장식하기 위해 만든 나무판으로 도장과 같습니다. 시전지의 전(箋)은 글이나 편지를 쓰는 작은 쪽지 를 의미하며, 시전지판 표면에 먹 또는 염료를 발라 시전지에 찍어내어 사용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편지와 시를 주고받을 때 상대에 대한 마음, 또는 시기에 알맞은 시전지판으로 종이를 장식하였습니다. 시전지판은 18세기 이전에는 크기가 크고 무거운 나무를 사용하였기]]></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떡살}]]></title>
								<link>/bbs/museum/744/326139/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2-04-26 11:16:2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떡살 근대, 가로 42.9cm, 세로 5.4cm  떡살은 떡을 눌러 여러 가지 무늬를 찍어내는데 쓰는 판으로, 떡본,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합니다. 떡살은 누르는 면에는 음각 또는 양각으로 새긴 무늬가 있어서 적절한 크기로 잘라낸 떡에 물기를 묻혀서 도장을 찍듯이 찍으면 떡에 무늬가 남습니다. 떡살은 재질에 따라 나무 떡살과 자기 떡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무 떡살은 강하고 탄력성 있는 감나무, 대추나무, 박달나무, 돌배나무 등으로 만들며, 긴 나무에 연속무늬나 여러 개의 단독무늬를 새긴 직사각형(長方形)의 형태가 많습니다.]]></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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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비녀}]]></title>
								<link>/bbs/museum/744/326138/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10-22 11:02:11.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비녀(簪)
  조선
    
  비녀는 과거 여성들의 머리를 꾸미기 위한 장신구입니다. 비녀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선사시대로 당시에는 동물의 뿔을 이용하여 비녀를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삼국시대부터 금, 은과 같은 금속재료를 사용한 비녀들이 제작되었으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비녀의 모습도 화려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영·정조 시기에는 가채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발제개혁(髮制改革)이 이뤄지면서 머리의 형태가 얹은머리에서 쪽진머리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쪽진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녀가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은장도}]]></title>
								<link>/bbs/museum/744/326137/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10-22 11:02:0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은장도(銀粧刀)  
 조선, 길이:11.65㎝, 칼길이:5.4㎝
 
  자그마한 크기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은장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실용적인 용도보다 수공예품으로 그 가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장도(粧刀)’는 평상시에 차는 작은 칼을 말하는데, 노리개와 함께 옷고름에 차면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지닌 것은 낭도(囊刀)라고 합니다. 
  장도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그 쓰임새가 광범위해지는데요, 부녀자들에게는 정절을 지키는 호신용 도구이자 노리개와 더불어 장신구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또한 고관에게는 음식의 독을 감별해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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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수저집}]]></title>
								<link>/bbs/museum/744/326136/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10-22 10:27:07.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수저집
 근대/일제강점기, 가로 9.8cm, 세로 27.7cm  
 
 이 수저집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넣어서 보관하거나 휴대하는 주머니로, 수저 두 벌을 넣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이 수저집은 행복과 기쁨을 상징하는 홍색 비단으로 만들고, 앞면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문양(十長生文:학, 거북, 사슴, 소나무, 대나무, 해, 구름, 돌, 물결, 불로초)을 자수로 묘사하였습니다. 뒷면에는 부귀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자손창성 부귀다남(子孫昌盛 富貴多男)’이란 길상문양(吉祥:장수나 행복, 좋은 일을 상징하는 문양]]></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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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배갯모}]]></title>
								<link>/bbs/museum/744/326135/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10-22 10:26:0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베갯모
 근대/일제강점기
 
 베개는 팥·녹두·쌀겨·메밀껍질 등을 속에 넣어 만드는데, 나무·대나무·도기 등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베갯모는 베개의 형태를 잡아주거나 베개를 장식하는 용도로 베개의 양 끝에 대는 꾸밈새입니다. 
 이 베갯모는 상단에는 구름과 해, 벽오동 잎, 중앙에는 한 쌍의 봉황과 일곱 마리의 새끼 봉황, 좌우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하단에는 돌에 핀 불로초, 테두리에는 아(亞)자 문양을 수놓았습니다. 벽오동(碧梧桐)에 깃들여 사는 아홉 마리의 봉황을 수놓은 베개를 구봉침(九鳳枕)이라고 하는데,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귀주머니}]]></title>
								<link>/bbs/museum/744/326134/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19 13:41:06.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귀주머니
 귀주머니 근대/일제강점기, 길이 15.6cm 
 
  다홍색 비단에 풍성하게 핀 모란과 양쪽 귀에는 패랭이꽃 문양을 수놓은 각진 형태의 주머니입니다. 
  주머니는 물건을 넣어 몸에 지니는 물건으로 우리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하여 예로부터 남녀노소 두루 사용했습니다. 형태에 따라 둥근 모양의 두루주머니(염낭)와 각이 진 귀주머니(각낭, 줌치)로 구분됩니다. 
  주머니는 작은 물건이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는 물건으로, 부적과 같은 뜻을 지녔기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시전지판(詩箋紙板)}]]></title>
								<link>/bbs/museum/744/326133/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19 13:40:33.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시전지판(詩箋紙板) 
  조선, 가로 6.8cm, 세로 15.1cm
  
  서신을 보내는 서한지(書翰紙)나 시(詩), 부(賦)를 지어 적는 종이인 시전지를 인쇄하기 위한 목판입니다. 시전지판에는 사군자, 송학, 연꽃 등을 주로 새겼는데, 가느다란 세로선을 새겨서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시전지판에는 매화를 양각으로 새기고 홍색먹으로 찍어낸 듯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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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쌍학 흉배(雙鶴 胸背)}]]></title>
								<link>/bbs/museum/744/326132/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19 13:39:33.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쌍학 흉배(雙鶴 胸背)
 조선, 가로 17cm, 세로 19cm
   
 흉배는 조선시대에 왕과 왕족, 관리의 평상 집무복에 달았던 표장(表章)입니다. 관직의 성격에 따라 문양을 달리하였는데, 문관(文官)의 경우에는 문인(文人)의 고고한 기품에 비유되는 학을, 무관(武官)의 경우에는 무예나 용맹함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선택하여 문양의 상징성을 반영시켰습니다. 
 이 흉배는 당상관 문관의 관복(官服)에 부착했던 것으로, 주된 도안이 학 두 마리여서 쌍학흉배라 부릅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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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형제필통(兄弟筆筒)}]]></title>
								<link>/bbs/museum/744/326131/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19 13:37:54.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형제필통(兄弟筆筒) 
  조선, 높이 13.7cm
    
  붓을 꽂을 수 있도록 만든 필통입니다. 대나무 두 개를 연결하고 바닥에 나무판을 대어 만들었습니다, 대나무의 몸통에는 화조문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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