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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link>/nas/k2web/WIZARD_7.0.6.2_hallym/sites/museum/</link>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CDATA[조선어역해문(朝鮮語譯解文)}]]></title>
								<link>/bbs/museum/747/326010/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2-04 14:30:5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조선어역해문(朝鮮語譯解文) / 조선시대(53×18cm, 종이)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하여 오랜 시간부터 다양한 역사·문화적 관계를 구축하며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조선 초기 사역원(司譯院)은 전문적인 외교·통역을 담당하는 역관(譯官)을 양성하는 체계를 갖춘 기관이었습니다. 역관은 조선과 가까운 나라들의 언어를 배웠으며, 그중 일본어의 경우 일본에서 입문용 교재로 출판된 『이로파(伊路波)』를 한글로 발음을 표기하여 익혔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실용적]]></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베갯모판}]]></title>
								<link>/bbs/museum/747/326009/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2-04 14:27:2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베갯모판 
 조선, 지름 12.1㎝ 두께 3.0㎝
 
 베개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위하여 누울 때 머리를 받쳐주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침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인 베개는 속에 왕겨·메밀껍질 등을 넣고 봉한 다음, 겉에 흰색의 무명천을 싼 것으로 양쪽의 끝을 둥글게 하거나 각지게 하여 각종 무늬를 수놓아 꾸몄습니다. 이외에 나무·대나무·도기 등으로 만든 베개도 있습니다. 
 베갯모는 베개의 형태를 잡아주거나 베개를 장식하는 용도로 베개의 양 끝에 대는 꾸밈새입니다. 베갯모에는 나무 판에 조]]></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박정양이 보낸 편지글(朴定陽筆 簡札)   박정양, 1881년, 44×22.7cm, 종이}]]></title>
								<link>/bbs/museum/747/326008/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5:45:1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박정양이 보낸 편지글(朴定陽筆 簡札)
  박정양, 1881년, 44×22.7cm, 종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교관, 대한제국의 정치가인 박정양(朴定陽: 1841∼1904)이 1881년 12월 3일 손위 친척에게 보낸 준 물건에 감사의 뜻을 전한 답장이다. 
  박정양은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워 오기 위해 조선 정부가 파견한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근대 개혁과 관련된 여러 관직을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현재의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홍순연이 쓴 이백의 시&lt;객중행&gt;(客中行}]]></title>
								<link>/bbs/museum/747/326007/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5:24:43.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홍순연이 쓴 이백의 시 객중행 (客中行)
  조선 1711년(숙종 37), 59×107cm, 종이 
  
 조선시대 문신인 홍순연(洪舜衍,1653~?)이 1711(숙종 35)년 통신사의 서기(書記 : 문서를 맡거나 기록하는 사람)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남긴 글씨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객중행(客中行)」이라는 시를 초서(草書, 곡선으로 흘려 쓰는 한자의 서체)로 쓴 것으로, 이 글씨와 함께 이백의 다른 칠언절구(七言絶句, 중국 고전시의 한 형식으로 한 구절이 일곱 글자로 된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김의신이 쓴 서첩(雪峰書帖)}]]></title>
								<link>/bbs/museum/747/326006/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4:53:18.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김의신이 쓴 서첩(雪峰書帖)
 조선17세기, 28×43cm, 종이 
  
  조선 중기에 서예가로 활동한 김의신(金義信,1618~1663이후)이 쓴 서첩으로 
 굴원(屈原, B.C.343추정 ~ B.C. 277추정)의 「어부사(漁父辭)」 와 중장통(仲長統, 179~219)의 「낙지론(樂志論)」 등 두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의신은 오랫동안 사자관(寫字官)으로 국가 공문서의 정서(正書)를 담당했습니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우리나라의 명필로 사자관 출신으로 김의신을]]></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히토미 유겐이 쓴 춘추석설(人見友元 筆 春秋石說)}]]></title>
								<link>/bbs/museum/747/326005/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4:10:5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히토미 유겐이 쓴 춘추석설(人見友元 筆 春秋石說)
 히토미 유겐(人見友元), 1694,  265.5×26.3㎝, 종이 
  
 이번에 소개할 소장품은 히토미 유겐(1638~1696)이 쓴 글입니다.
 히토미 유겐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에 활동했던 유학자이자 시인입니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학문을 강의하던 하야시 라잔(林羅山)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쇼군의 신임을 얻어 막부(幕府)의 역사서를 편집하였습니다. 1682년 조선통신사가 에도를 방문하였을 때 통신사의]]></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이매계가 쓴 자작시(李梅溪筆 漢詩卷) }]]></title>
								<link>/bbs/museum/747/326004/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58:51.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이매계가 쓴 자작시(李梅溪筆 漢詩卷) 
 
 이매계(李梅溪), 392×28.5㎝, 종이 
  
 이번에 소개할 소장품은 일본에서 활약한 조선인 유학자인 이매계(1617~1682)가 쓴 한시 두루마리입니다. 
 이매계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잡혀간 유학자 이진영(李眞英, 1571~1633)의 아들입니다. 이진영은 일본 기슈(와카야마[和歌山]의 옛이름)에서 조선의 성리학을 전파하였고, 기슈를 다스리던 번주(藩主)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북두칠성도(北斗七星圖)}]]></title>
								<link>/bbs/museum/747/326003/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55:18.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북두칠성도(北斗七星圖)
 조선(근대), 가로 52cm, 세로 86cm
 
 이번에 소개할 소장품은 칠성도입니다. 
 칠성도라고도 불리는 북두칠성도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일곱 분의 신을 의인화한 무속화(巫俗畵)입니다.
  무속화는 무신도, 무화라고도 불리며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한국 전통의 무속신앙에서 믿는(숭배하는) 신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칠성도는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믿어온 칠성신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칠성신은 7개의 별이 모인 북두칠성을 7명의 신으로 의인화한 것입니다.]]></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나한상(木造羅漢像)}]]></title>
								<link>/bbs/museum/747/326002/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49:5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나한상(木造羅漢像)
 
 조선후기, (좌) 전체높이 81cm, 너비 63cm (우) 전체높이 82cm, 너비 55cm
 
 나한은 범어(梵語, 고대 인도어) 아르한(Arhan)을 한자로 옮긴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깨달음을 얻고 신통력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제자입니다. 
 중생을 구제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나한은 과거부터 유행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 큰 가뭄에 비를 내려주는 것을 나한을 통해 기도했습니다.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김명희에게 보낸 장심의 편지첩(張茶農尺牘) }]]></title>
								<link>/bbs/museum/747/326001/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30:37.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김명희에게 보낸 장심의 편지첩(張茶農尺牘) 
 
 장심(張深), 1827년, 19.5×33cm, 종이 
  
 중국 청대의 화가인 장심이 김명희에게 보낸 편지첩입니다. 김명희(金命喜:1788~1856 )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추사 김정희의 동생입니다. 
 김명희는 1822년 청나라로 가는 사신 행차인 연행(燕行)을 가는 부친을 따라 자제군관(子弟軍官:외국에 보내는 사신의 아들이나 친척으로 임명한 군관)으로 북경(당시의 연경)에 들어가 청나라의 여러 학자들과 학]]></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청동거울(銅鏡)  }]]></title>
								<link>/bbs/museum/747/326000/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27:36.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청동거울(銅鏡)
 
 고려시대
 
  청동거울은 청동기 시대 후기부터 발견되었으며, 한국식 동검 등의 위세품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구조적 특징으로는 거울 뒷면에 꼭지가 많이 있으며(多紐), 무늬는 원과 선 등의 기하학적 무늬를 활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거울로는 무늬 선의 간격이 다소 넓고 거친 특징을 가진 거친 무늬 거울(多紐粗紋鏡)과 세밀한 무늬를 가진 잔무늬 거울(多紐細紋鏡)이 있습니다.
 원삼국시대가 되면서 많은 꼭지가 달린 거울이 사라지게 됩니다. 
 거울의 무늬도 기하학적 무늬에서 구름무늬, 용무늬]]></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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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박산로(博山爐)  }]]></title>
								<link>/bbs/museum/747/325999/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3:23:08.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박산로(博山爐)
 철기시대 추정, 높이 10.8cm
 
  박산로는 향을 피우는 작은 화로인 향로의 일종으로 박산향로(博山香爐)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이와 유사한 형태의 박산로가 낙랑 고분인 석암리 9호 고분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박산로는 후일 삼국시대 백제 최고의 예술품으로 불리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한나라 때는 신비주의에 흠뻑 빠져있던 시대입니다. 누군가는 불로장생을, 혹은 먼 산 너머 산다는 신기한]]></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한나라 거울(漢鏡)    }]]></title>
								<link>/bbs/museum/747/325998/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6:30:13.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한나라 거울(漢鏡)
   
 중국 한, 지름 10.4cm, 15.9cm
 
  고대의 거울은 자신의 용모를 비추어보는 기능 뿐 만 아니라 제사장이 빛을 반사시켜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권위의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처음 동경이 나타난 시기는 청동기시대로 뒷면에 고리가 두 개 이상 달린 거친무늬 거울(粗紋鏡)이 만들어지다가 점차 삼각형과 원형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배치된 잔무늬 거울(精文鏡)이 만들어집니다. 
  한나라 거울은 뒷면에 고리가 하나면 달려 있으며, 시기에 따라 반리문경(磻螭文鏡), 초엽문경(草葉文鏡)]]></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방약합편 }]]></title>
								<link>/bbs/museum/747/325997/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5:02:1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방약합편
 
 가로 19.1cm, 세로 28.4cm
 
 『방약합편(方藥合編)』은 어의(御醫) 출신 의원인 황도연이 저술한 한의학 서적입니다. 
 혜암(惠庵) 황도연(黃度淵, 1808~1884)은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李濟馬, 1837~1900), 
 부양론(扶陽論)을 주창한 이규준(李奎晙, 1855~1923)과 더불어 개화기 3대 의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방약합편』은 황도연의 저서인 『의방활투』·『의종손익』등을 합하여 그의 아들 황필수(黃泌秀)가 편찬하였습니다. 
 의학기술과 약물 지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건륭제천수연시서첩(乾隆帝千叟宴時書帖) }]]></title>
								<link>/bbs/museum/747/325996/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4:42:04.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건륭제천수연시서첩(乾隆帝千叟宴時書帖) 
 
 조선
 
 1875년 1월 중국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즉위 50주년을 축하하는 천수연(千叟宴,중국 황실의 후예들에게 경로효친의 정신을 고취하고자, 
 황제의 이름으로 고위대신부터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60세에서 90세 이상의 노인을 불러 베푸는 연회)이 열렸습니다.
  청나라에서는 조선에 황제의 칙서를 보내 나이가 70세 이상인 관리를 사신으로 참석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에서는 시문(詩文)이 뛰어난 이휘지(李徽之, 1715~1785, 당시 70세), 강세황(姜世晃]]></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공자가 기기를 보는 그림(孔子觀攲器圖)    }]]></title>
								<link>/bbs/museum/747/325995/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3:52:4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공자가 기기를 보는 그림(孔子觀攲器圖)
   
 1786년, 39.6×100.8cm공자가 기기를 보는 그림(孔子觀攲器圖)  
 
 공자(孔子:기원전 551~479)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유학의 창시자이자 정치가이며, 교육자입니다. 
 동양의 지식인들은 공자의 일화를 그림을 그려 감상하면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이 그림은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子路)가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에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기기(攲器)에 물이 채워지는 과정을 보며
  중용과 겸양의 원리를 터득하여 항상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말을 탄 선비 그림(騎馬圖)    }]]></title>
								<link>/bbs/museum/747/325994/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3:28:11.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말을 탄 선비 그림(騎馬圖) 
 
 조태억(趙泰憶), 1711년, 48×24.5㎝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포로 쇄환 등을 목적으로 외교사절단인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였습니다.
  통신사는 정3품의 정사(正史)를 비롯하여 부사, 종사관 등의 3사와 상상관(上上官) 등 왜학관에서 마상재, 사공에 이르기까지 400여명의 사절단이 파견되었습니다.
  통신사 일행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를 거쳐 후쿠오카에 입항하여 에도에 이르는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외교문서인 국서를 전달하는]]></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조선에서 표류해 온 사람 그림(朝鮮漂客圖)  }]]></title>
								<link>/bbs/museum/747/325993/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2 13:16:27.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조선에서 표류해 온 사람 그림(朝鮮漂客圖) 
 
 우키다 잇케이(浮田一蕙), 1838년, 56.5×46㎝
 
 1996년 재일학자 이원식 씨는 일본 교토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에서 표류해 온 사람을 그린 그림을 입수하였는데, 
 그것은 19세기 에도시대 말기의 유명한 화가였던 우키다 잇케이가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불단 위에 큰 불상 1구와 양편으로 작은 불상들, 경상에 불경을 펼쳐 놓고 독경하는 승려, 붓과 종이를 들고 선 채로 필담하는 승려, 
 무엇인가 설명하는 더벅머리 총각과 손에 장죽을 들고 이]]></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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